DIKW와 점선면체 (이미지=ResearchGate, 김태윤의 미술 산책)
AI 시대가 되면서 다시 DIKW 피라미드가 주목받고 있다. 여기에 통찰과 직관이라는 사고 체계도 포함되어 이야기되고 있다.
DIKW는 데이터(data, 점) → 정보(information, 선) → 지식(knowledge, 면) → 지혜(wisdom, 입체) → 통찰(insight) → 직관(intuition)으로 확장해 나가는 구조다.
점(데이터)을 연결해 선(정보)을 만들고, 면(지식)을 구성한 뒤, 이를 입체적(지혜, 통찰, 직관)으로 바라보는 과정에 비유하기도 한다.
ㅣ 혐오의 생성, 왜곡된 '점·선·면'
혐오는 사실(data)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수집된 정보(information)가 가짜 지식(knowledge)으로 굳어질 때 발생한다.
0차원 점(data), A 집단의 누군가가 저지른 잘못된 행동 하나하나가 '데이터'로 기록된다.
1차원 선(information), 누군가 이 점들을 악의적으로 연결해 'A 집단은 원래 저래'라는 편향된 '정보'를 만든다.
2차원 면(knowledge), 누군가 이렇게 편향된 정보들을 악의적으로 연결하여 'A 집단은 위험하다'라는 왜곡된 '지식'을 만들어내고, '혐오' 낙인을 찍어 널리 배포한다. 또는 떠돌아다니는 편향된 정보들이 하나둘씩 쌓여 'A 집단은 위험하다'라는 왜곡된 '지식'을 스스로 갖게 된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새로운 사실(data), 정보(information), 지식(knowledge)을 봐도 이를 거부하게 된다.
누군가가 보여주는 2차원 한 면만 보기 때문에 왜(why)를 묻는 3차원 입체(wisdom), 통찰(insight), 직관(intuition)의 역량을 잃게 되거나, 가질 수 없게 된다.
ㅣ 혐오하는 이유, 누군가에게는 '이익'이 된다
혐오를 들여다보면, 웃는 가면 아래에 숨겨진 일그러진 구조가 보인다.
혐오의 중심에는 '상대방에 대한 미움'보다 '나 자신에 대한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불만족한 과거, 불안정한 현재,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키고, 그 불안과 두려움을 해소할 희생양을 찾게 만든다.
또한, 혐오는 누군가에게는 '이익'이 된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사람들을 편 가르고 갈등을 부추김으로써 자신의 지지 기반을 다지려는 정치, 경제, 종교, 언론 등이 혐오라는 불꽃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가장 무서운 점은 혐오가 인간 뇌에서 생존을 관리하는 뇌간과, 감정을 좌지우지하는 구피질에 자리를 잡는 것이다. 자주, 오래 혐오에 노출되면, 뇌는 생각을 주관하는 신피질을 거치지 않고 생존과 감정의 영역으로 넘어가, A 집단을 보자마자 거부감을 느끼고 혐오하게 된다.
이 상태가 되면, 아무리 올바르게 살더라도 A 집단이라는 이유만으로 혐오의 대상이 되어 배척을 당하게 된다. 더 나아가 '혐오하는 우리 역시 언제든지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일본에서 대한민국과 한국인을 혐오했던 혐한(嫌韓)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ㅣ 혐오에서 벗어나기
혐오는 결국 자기 자신이나 타인을 2차원 평면으로 보려는 태도에서 나온다. 혐오에서 벗어나려면 자기 자신이나 타인을 3차원 입체로 보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평면으로 보는 것은 그 사람의 특정 이미지를 박제하여, 하나의 단어나 속성에 가두는 것이다. 이는 2차원 종이를 볼 때처럼 앞모습만 보고, 3차원 입체가 가진 옆모습, 뒷모습, 속, 그림자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저 사람은 ○○ 출신이야", "저 사람은 직업이 △△야"라는 하나 점(data)이나 선(information)만으로 그 사람 전체를 판단하는 순간, 그 사람은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라, 사전 속에 박제된 단어나 속성이 되어버린다. 이것이 바로 혐오가 작동하는 전형적인 평면적 시선이다.
입체로 보는 것은 그 사람도 나와 같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3차원 입체를 볼 때처럼 그 사람의 웃음 뒤에 가려진 슬픔, 약점, 고뇌 등 그림자까지도 함께 보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혐오를 부추기면 '왜 저런 말을 할까? 저걸로 이익을 보는 구조는 무엇일까?'라고 숨겨진 본질을 꿰뚫어 봐야 한다.
내가 화를 낼 때는, 내 나름의 이유가 있다. 'A 집단의 저 사람이 오늘 화를 낸 건,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을 수도 있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상대방도 나처럼 복잡하고 연약하지만 귀한 존재로 대하기 시작하는 입체적 시선이다.
ㅣ 혐오하지 않을 용기
혐오를 부추기는 사람들은 세상을 편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고,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쉽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입체적인 세상은 복잡계(Complex System)로 불확실하지만, 평면적인 세상은 단순계(Simple System)로 명료하다.
현대 사회는 데이터(점)와 정보(선)가 너무 많아 지식(면)으로 구성하기가 매우 힘든 복잡계다. 입체적인 진실(복잡계)을 파악하려면 수많은 지식(면)을 통찰하고 직관해야 하는데 이건 더 힘들다. 복잡계 때문에 겪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피로다. 그리고 혐오를 부추기는 자들은 사람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자극해 공포라는 강력한 감정을 생생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이때, 혐오는 그냥 "A 집단은 나빠"라는 한 문장으로 모든 상황을 끝내버린다. 뇌의 생존 영역과 감정 영역만 사용하는 가장 편한, 원초적인 길을 선택한 것이다. 원초적인 길을 걸으면 일시적으로 편해질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결국 자기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가치'도 함께 잃어버리게 된다.
건전한 상식으로 올바르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혐오에 쉽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약해서가 아니라 복잡계가 주는 피로와 세뇌된 공포로, 원초적인 혐오에 기대어 편해지고 싶은 유혹 때문이다.
이는 세상을 입체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느낄 수밖에 없는 일종의 성장통 같은 괴로움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이 괴로움은 자기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지키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지키기 위해 치르고 있는 고귀한 비용이다.